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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4.

니체적 잠언 1






 




니체적 잠언
 

요즘 논문 때문에 니체를 다시 읽고 있다. 이번이 삼독째인데 다시 읽어도 그 깊이와 우아함이 씹힌다(니체는 독거미다!). 나는 도서관에서 혼자 일하기 때문에 커피 타임같은 쉬는 시간에 심심했었는데 문득 나도 자투리 시간에 이런 (니체적) 잠언들을 몇개 만들어 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래가 지난 3-4일 동안 만든 몇개의 결과물들이다.
  
1. 있다고 생각하면, 보인다.
 
2. 여성은 호감이 가는 남성 앞에서, 혹은 옆에서, 웃는다. 여성에게 호감을 가진 남성은 그녀를 바라본다.
 
3. 사랑의 상실이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안에 깃들어 있던 신뢰의 상실이다.
 
4. 질투란 지옥이다.
 
5. 지옥이란 육체적 고통이다.
 
6. 한 사람이 드는 예는 보통 그 사람의 무의식적 소망이다.
 
7. 우리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지만, 신뢰 없이는 살 수 없다.
 
8.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슬플 때는 슬프게, 즐거울 때는 즐겁게. 그러나 항상 우아하게.
 
9. 세련된 것은 보통 아름답지 않다. 차라리 세련됨은 아름다움의 적이다.
 
10. 테크닉에 함몰되어 예술에 도달하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다.
 
11. 산울림과 마찬가지로 슈퍼스트링은 '하늘에서 떨어진' 음악이다. 이 음악들은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에서 나왔다. 그러나 실상 이 음악들은 차라리 '그들'에게서 나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12. 한 인간의 '미덕'은 때로 그의 저주다.
 
13. 어떤 한 인간이 평생을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천재?).
 
14. 천재의 징표는 자신의 재능에 깔려죽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재란 '경쾌한 발걸음'이다(모차르트).
 
15. 행복이란 육체의 느낌이다. 그러나 보통 그것은 정신의 상태라 불리곤 한다.
 
16.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발명된 것이다. 저 세상까지도(더하여, 이 세상까지도).
 
17. 많은 경우 거장에 대한 비평가의 적의는 그 비평가 자신이 '실패한 예술가'로 스스로를 생각한다는 점으로 설명 가능하다.
 
18. 기다리는 사람은 초조하다(그녀는 지루하지 않다).
 
19. 비평(비판)에 대한 비평(비판)을 해보지 않은 비평가는 해악적 존재다.
 
20. 고통받는 사람은 지루함을 모른다.
 
21. 때때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22. 한 사회가 '쓸모 없다', '보잘것 없다', '별 볼 일 없다'고 이르는 것에 그 사회의 비밀이 숨어있다.

 
23. 말이 없는 사람은 관심을 끈다. 그러나 전혀 말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24. 친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자기를 열어줄 또 다른 자기, 자기 밖의 자기를(친구에 대한 최대의 찬사).
 
25. '천재적'이란 말보다 '비천재적'인 말은 없다.
 
26.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있는 여성은 깊이 있는 아름다움에 이르지 못한다.
 
27. 외로운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를 지나친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외롭다.
 
28. 어떤 모임에서 피곤한 사람은 자리를 일어서야 하지만, 피곤함이 그것을 방해한다.
 
29.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성격,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게 보여진다(매력의 '객관성'?).
 
30. 좋은 음악에 대한 모든 정의는 주관적이다(심지어 문화적도 아니다).
 
31. '할 일이 없을 때,' 그 시간을 '창조적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32. 매력없는 사람이 매력있는 사람을 향한 징검다리가 되는 수가 있다.
 
33. 베이시스트는 왜 그 악기를 선택한 것일까?
 
34.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블루스와 클래식도 좋아한다.
 
35. '우아한 여성'과 '우아하게 보이는 여성'이 있다.
 

36. 어떤 좋은 음악도 없는 것보다 못 하다.
 
38. 이른바 '인간의 본질'이란 항상 그 말을 한 사상가가 속한 문화의 본질일 뿐이다.
 
39. 자유로운 여성이 매력적이다. 단, 그 사회 관습의 한계 내에서만 그러하다. 이 한계를 벗어나면 그녀는 부담스러운, 두려운, 결국 추한 존재로 인지된다(Unheimlich, nico)
 
40.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미 죽는다. 실제의 죽음이란 자신과 타인을 위한 단순한 확인 절차(현장검증)에 불과하다.
 
41. 이른바 '천벌'이란 우연한 개인적 불행이다.
 
42. 모든 대화는 독백이다.
 
43. 모든 죽음은 자살이다. 심지어 교통사고도 그렇다.
 
44.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그사람을 쳐다보는 사람과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 그러나 이 두사람은 모두 그 사람을 '쳐다본다'(관심으로서의 무관심, 혹은 전략으로서의).
 
45. '이해할 수 없는 여성(남성)'이란 '이해할 수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보통 동성의 친구들에게는 쉽게 '이해가능한' 것이다.
 
46. 인생이란 어떤 경우에도 참으로 달콤하고 아름답다(dolce vita).
 
47. 한 인간이 얼마나 천재인가는 그녀가 어렸을 적에 얼마나 외로웠는가에 다름 아니다.
 
48. 동양 철학에는 절대가 절대로 없다!
 
49. 모든 불행한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일이 오늘과 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일이 오늘보다 더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살을 생각한다.
 
50. 암전.



 
 
2005. 06. 17. 스트라스부르에서.

 

  

2012. 7. 21.

알베르 카뮈 - 젊은 시절의 글들

알베르 카뮈(1913-1960) - 젊은 시절의 글들
 


* 「제앙 릭튀스 - 가난의 시인」, 1932

  
“가난한 사람, 모든 사람이 다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은 항상 말이 없는, 그 착한 가난뱅이인 누군가에게 마침내 뭔가를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시도해 본 것이다. - J.R .”(26)

  
모모한 현대 작가들의 유식한 수다가 아니라, 비참한 사람들이 영원한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 쓰는 그런 말투, 고통으로 하여 놀라운 발견들이 솟구쳐 오르는 저 귀족적인 비속어로 말했던 것이다(27). 그는 병적인 불행에 매몰된 인간을 사로잡는, 사랑에 대한 저 병적 굶주림을, 애정에 대한 저 목마름을 뜨거운 언어로 말했다. 그는 편히 쉴 수 있는 사랑의 항구를 갈구하는 불행한 사람들의 막연한 열망들을 모두 다 말했다. 집 없는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떠돌이들에게도 심장이 있고 영혼이 있다. 그 영혼은 누구보다도 더한 욕망으로 부풀어 있어 그만큼 더 아름다운 것이다. / 이 고통의 절규 속에 사실은 어떤 주장 같은 것이 담겨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밝혀보고자 한다. 「가난뱅이의 혼잣말」은 불행한 사람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표현이다. [...] 그러나 애석하게도 너무나 자주 모진 현실이 그의 꿈을 흩어버린다. 그래서 바로 그때 부당한 운명에 대한 격한 반항이 솟아오른다. 딱하게도 너무나 정당한 반항인 것이다(28).

  
* 「음악에 대한 시론(試論)」, 1932

  
니체는 인간(그의 저작에서는 그리스인들)의 천성적인 성향들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른다. 사실, 우리는 꿈속에서 마음이 편해지고 현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상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개체성을 잃어버리고 인류 전체와 동화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니체가 아폴론적인 면, 즉 꿈에 의하여 현실을 변용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부르는 면이다. 그거은 황홀경에 빠진 아폴론으로 상징되는 일종의 희열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찢어질 듯한 고통의 신인 디오니소스로 상징되는 또 하나의 본능에 시달린다. 이 디오니소스적 본능은 우리를 진정한 도취 속에 빠뜨려 결과적으로 우리의 고유한 개체성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이 두 가지 본능이 합쳐진 결과 우리는 삶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 두 가지 본느이 합쳐진 결과 우리는 삶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그리하여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천재의 두 가지 경향을 구분해볼 수 있다. 그리스적 인간은 우선 디오니소스적 세계 속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고 다음으로 첫 번째 충동을 다스리기 위하여 아폴론적인 것에 호소한다. [...] 차분하게 가라앉은 아름다움, 아폴론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 힘은 다른 어떤 종족의 경우보다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속에 훨씬 더 깊이 뿌리박은 고통의 감정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 “그리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의 개념은 고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니체가 자기 이론의 토대로 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 사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구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투쟁, 야망, 질투, 온갖 종류의 폭력들에 의하여 찢어질 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혹자는 다른 민족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특유의 감수성과 다정다감함으로 인하여 그리스 사람들은 가장 큰 고통의 소질을 타고난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참혹하게 삶의 끔찍함을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야만적인 디오니소스적 고통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 어떤 민족의 경우보다도 더 아름다운 형식들을, 아니 꿈들을 창조함으로써 사람의 그 사나운 참화들을 타개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던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춤과 음악을 활용했다. 그들은 박자를 통해서 신비적인 도취를 다스렸다. 그래서 그들은 감정과 상상을 다 같이 만족시켜주는 예술을 창조해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극을 창조한 것이다. / 사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그리스 사상의 밑바탕은 쓰디쓴 비관주의이다.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라는 그리스의 잠언보다 더 비관적인 어디에 있을까?) 그렇지만 그리스인은 그들의 몽상적 기질로 인하여 삶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람을 보다 더 기분 좋은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은 꿈을 통하여 삶을 지워버렸다. 그들은 삶을 아름다움과 도취로 대치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적 평온함이다. 그래서 쉴러가 ‘그리스적 순진함’이라고 부른 것은 전혀 순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삶을 지워버리고 꿈을 꿀 수 있는 자질이다. 즉 유일한 생존은 아폴론적인 생존이니 삶은 한갓 환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리스사람들은 항상 삶을 무시하라고 권했던 것이다. 그들은 ‘알고자 하는 자들’에게 잔혹한 벌을 내렸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독이 든 당근 즙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이렇게 그리스 사람들은 꿈에 힘입어 사람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이 바친 모든 노력은 바로 고통에서 ‘승리의 의지’를 이끌어내는 데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노력, 이런 삶의 고통에는 오직 음악만이 어떤 표현 방법을 부여할 수 있다(50-52).


  
* 「직관들」, 1932
 



“O. 1932. 나는 달리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듯, 오직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 앙드레 지드”(68)
 


바로 그때 광인이 내 방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 광기에 귀를 기울여봐. [...] 흔히들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정신의 예속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 알기를 거부하는 것이 해방이며 결정적인 일보 전진이며 영혼의 자유화라는 것.”(69) / “오늘 아침엔 다른 보통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생각에 마구 빠져들었어.”(71) / 무용한 노력들로 낭비되고 수많은 망설임들로 찢어진 나의 삶이 바로 그 망설임들로 - 그 망설임들은 나름대로의 고통들이니까 -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87).
 


* 독서노트, 1933년 4월
 



지드에게 있어서의 정당화 욕구라고 하는 것은 지드가 느끼는, 자신의 명철한 이성의 존재와 정열의 존재를 서로 화해시켜야 할 필요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명철한 이성의 존재는 자신의 정열의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 그에게 정당화 욕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화인 것 ......(95-96).
 


*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 1933
 



요컨대, 어쩌면 실제로, 우리의 삶은 우리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25).
 



* 모순들, 1933
 



인간 조건을 받아들인다? 그게 아니라 반대로, 반항이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 [...] 솔직해야 한다. 한사코 솔직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을 거슬러가면서까지. /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반항하느냐, 이것은 삶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이다(131).
 




* 합일 속의 예술, 1933
 




“그래서 나는 오직 신음하면서 모색하는 사람들에게만 동의할 수 있다. - 파스칼”(137).
 




그러니까 예술은 신성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신성함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이다. 혹자는 우리가 예술을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함으로써 예술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수단이 목적보다 더 아름답고 탐구가 진리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143).
 


인간에게는 어떤 논리적 태도를 택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144).
 


예술의 고유한 본질은 “모호한 겉모습들 속에 떠다니는 것을 영원히 변치 않는 공식들로 고정시키는 것”(쇼펜하우어)이다(145).
 



* 멜뤼진의 책, 1934


  
기다림이 사건보다 더 풍성하고 수단이 목적보다 더 확실하다면(157)
 


나 역시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만 동조할 수 있으므로 행복하다(159).
 

* 알베르 카뮈 전집(특별판), 책세상

 


1권 : 젊은 시절의 글. 안과 겉. 행복한 죽음. 결혼. 칼리굴라. (1931~1939)
2권 : 작가수첩1. 시지프 신화. 이방인. (1939~1942)
3권 : 오해.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페스트. (1944~1947)
4권 : 여행일기.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시사평론. (1947~ 1950)
5권 : 작가수첩2. 반항하는 인간. (1950~1951)
6권 : 여름. 전락. 단두대에 대한 성찰. 적지와 왕국. (1951~1957)
7권 : 작가수첩3. 스웨덴 연설. 문학비평 (1957~1959)
 
* 가난한 동네의 목소리들 - 나의 아내에게 1934년 12월 25일
 



우선, 이것은 생각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다(167). / 때에 따라서 그 어머니에게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아무 생각도 안 해”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렇다. 모든 것이 다 거기 눈앞에 있다. 그러니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이다(169+이하).




  

2012. 6. 24.

니체적 잠언 3



 



1. 모든 세대는 자신과 같은 음악을 듣는 사상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2. 그리스어 dike의 완벽한 우리말 번역 - 道
 

3. 사랑하는 남자를 얻고 싶은가? 그의 '유치한' 꿈을 끝까지 들어 주어라.
 

4. 상대가 자신을 잊기로 결정했을 때 여전히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5. 하이데거의 '불안'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인간적인 반응이다.
 

6. 그는 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을까 !
 

7. 無爲는 사실 판단이며, 爲無爲는 가치 판단이다.
 

8. 힌두교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앎이다(아름다움을 댓가로 치른 앎).
 

9. 그런데 道와 正義는 차라리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
 

10. 德不孤 必有隣 ! -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오직 德만이 그러하다.
 

11. 꿈의 정신분석에 결여된 것은 그것의 미학적 차원이다.
 

12. 프로이트를 플라톤 혹은 데카르트 이후 서구 최대의 사상가로 본다면 ...
  
13. 자신의 시대가 '타락했다'는 단언은 마치 자신의 시대가 '역사의 정점'이라는 견해와 마찬가지로 유치하고 피상적인 자기 중심주의의 한 예에 불과하다.
  
14. 잠언을 쓰는 자들을 위한 한 마디의 말 -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15. 무지는 논증이 아니다(마르크스)
 

16. 청년 프로이트의 글을 읽다보면 당시 빈의 한 의대생이 받았던 인문학 수업의 깊이에 경탄하게 된다.
  
17. 소위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헤겔)
 

18. 종교의 본질은 고대적 세계관의 '제도화'다. 그리하여 그것은 '왜?'를 인정치 않는다(왜를 묻는 행위 자체가 신성에 대한 모독, 불경, '죄'가 된다).
 

19. 무뚝뚝한 경고 - "잠언을 함부로 쓰지 마라! 그것은 네 정신의 깊이를 온전히 드러낸다."
 

20. 매우 흥미로운 말 -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똑 같다."
 

21. 나는 인간의 종교성은 인정하나, 제도화된 종교는 신뢰하지 않는다.

 
22. 확실히 가벼운 것, 움직이는 것은 보다 무거운 것, 움직이지 않는 것의 지배를 받는다(노자).
 

23. 자신을 좀 알아 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 ...
 

24. 잠언의 이상은 철학자와 시인의 만남이다.
 

25. "남성을 전쟁을 위해, 여성은 그의 휴식을 위해 길러져야 한다"는 니체의 단언은 '전쟁에 미친 한 여성혐오주의자',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예언자', '자신이 남들보다 글자 그대로 '우월하다'는 엘리트주의자'의 말로 이해할 때 거짓없이 가장 쉽게 이해된다.
 

26. 담배가 있는 여행과 담배가 없는 여행이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27. 지옥이, 하늘의 감옥(天獄)이 아닌, 땅의 감옥(地獄)이라는 점에 하늘과 땅의 모든 비밀이 숨어 있다.
 

28. 이런 말이 있다. "정치적 혁명으로 인간 삶의 본질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철학은 농담이자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정치적 관심이 부재한 모든 자기 혁명, 내적 혁명은 농담이자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29. 서양 철학에서 아직 우리는 필경 제국주의에 이르고야 마는 보편주의라는 '왕의 목'을 자르지 못 했다 - '유럽적 보편성의 보편성' 문제.
 

30.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 - 모든 병 중에 가장 심각한 병? 이 문제를 바라보는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31. 너의 절망에 충분한 시간을 주어라.
 

32. 네 병의 본성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33. 반성되지 않은 통속적 견해 - '모든 인간의 진리,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
  
34. 사랑받고 싶다면 상대에게 작은 약점을 보여라(니체).
 

35. 인간 관계에서 침묵은 잘 다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때로 전혀 새로운 관계(종종 보다 건강하고 깊이있는)를 향한 통로가 되곤한다.
 

36.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는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은 신앙이 합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논리계형적 구분의 선언으로 읽혀지는 것이 낫다.
 

37.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의 인식은 약 2,500년 전 오늘의 그리스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품었던 세계 인식의 연속,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지명의 예만을 들어본다면, 유럽, 아시아, 소아시아, 근동, 중동, 극동 등등).
 

38. 누군가를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39.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상상을 적어오라(마광수)
 

40. 변태는 없다(마광수) - 마광수는 보기 드문 충실한 프로이트주의자이지만 이 점에서 그는 프로이트를 넘어섰다.
 

41. "구름을 생각하지 마시오" - 당신은 이미 구름을 생각했다.
 

42. 망각은 또 다른 기억의 방식이다(롤랑 바르트)
 

43. "고통이 없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it is impossible to achieve an aim without suffering. - j.g. bennett) - 매우 타당한, 그러나 매우 위험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
 

44. 당신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robert fripp).
 

45.심리학은 자신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인간 심리현상을 신경증, 정신 질환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과대망상' 혹은 '편집증'으로 간주될 수 있다.
 

46. "나는 논쟁을 매우 좋아한다"(존 레논)
 

47. 누군가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은 당신의 삶을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48. 하나의 즐거운 우연 - 노자(도덕경)와 스피노자(윤리학).
 

49. 우리는 한 인간이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을 대하는 이해와 존중의 정도에 의해서만 그 사람의 (소위) '우월함'을 인정할 수 있다(어느 영국의 철학자).
 

50. 정상과 비정상, 광기의 경계선 위를 걷지 않는 철학, '위험 없이 안전하기만 한 철학'이란 그저 속물들의 교양에 불과하다.
 

51. 노력이란 때로 자신의 죄책감을 무마하기 위한 도덕적 자위행위에 다름 아니다.
 

52. 죄책감을 권력의 유용한 지배 도구로 보았던 니체의 탁월성!('도덕의 계보', '선악을 넘어서')
 

53. 노력하는 자는 결코 자기 자신의 이해라는 참다운 '내면적인' 궁극적 목표에 이르지 못 한다. 기껏해야 그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신의 '외면적' 목표만을 달성할 수 있을 뿐이다.
  
54.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은 다만 그가 자신도 세계도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강한 의지'란 그저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 자기 이해의 부족을 드러내는 하나의 '고백'에 불과하다.
 

55.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 있으나 자신만은 속일 수가 없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56. 이기주의자는 보통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은 물론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에리히 프롬. 사랑은 '능력'의 문제다)
 

57. 그런데, 이해도 '능력'의 문제다.
 

58. 참다운 강함은 부드러움이다(노자).
 

59. 심리학의 기본 법칙 - 부정은 긍정의 뒤집힌 형식이다.
 

60.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상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61. 한 철학자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많은 양의 '견딜 수 없는' 진리를 '견뎌내는가'에 달려있다(니체)
 

62.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옳은 길 위에 있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거기에 네 마음이 깃들어 있는지 살펴 보아라(우파니샤드).

 


 
 

2006. 07. 31. 스트라스부르.

2012. 8. 2.

책 읽는 방법 1








안녕하세요





어제는 모처럼 즐거웠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가셨지요? 새로운 곳에서 뵈니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못 오신 분들을 위해 다음 시간 진도와 진행방식을 설명드리면 .... 다음 시간까지 도올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통나무) 제2권 책 전체를 의무적으로 다 읽어오시고, 이후로는 종강까지 토론만 합니다. 저는 사회만 보고요.





 
주의해서 보셔야 할 것은




1. 책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의 정확한 의미를 책 안에서 찾아낸다.




2. 책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명제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한다.




3. 저자가 그 근거(reason)로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이해한다. 이 '왜'(why)를 찾아내는 것 이게 책 읽기, 철학하기의 전부입니다.


4.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책의 몇 쪽 몇째 줄에 나오는 말인지 그 문장을 - 기억이 아니라 - 쪽수와 줄수로 정확히 제시한다.


5. 책이나 저자에 대한 자신의 인상이나 느낌 혹은 주장이 아니라, 책의 논거(reason)를 책의 논지에 따라 찾아내고 이해한다(사실은 오해하지 않는 것이 급선무).

이상입니다. 이렇게 앞으로 4강을 더 토론하려면 책을 수십번은 더 읽고 거의 완전히 다 외울 정도로 책을 반복해서 읽고, 중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자신의 이해가 옳은 것인지 책 안에서 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점을, 위에도 적었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1. 책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자신의 주장이나 인상을 펴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는 점,




2. 논점(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원래의 자기 생각에 책을 꿰어맞추어 재단하는 것은 배움도 공부도 아니라는 점,




3. 책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인상 말고(그런 것은 나중에 각자가 혼자 조용히 집에서 하고 싶은 경우 알아서)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저자의 주장을 저자의 개념과 논리, 명제들을 따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지난 시간에 나왔던 부분도 더불어 계속 토론합니다.




1. "변하는 것만이 진리다"(278)라는 말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책 속에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해주는 다른 귀절들을 찾아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불변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다른 진리 개념이 있을 수 있는가?




2. 도올이 말하는 '(상대적 상황의) 보편성'과 첫째가름에 나오는 '인간 몸 구조의 보편성 및 기형'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거나 혹은 기만적이지 않은가? 더구나 개인적 신체적 몸이란 푸코적인 개인화 과정, 권력-지식 체제의 효과(결과)가 아닌가?




모든 인식은 인간의 인식이고, 인간의 인식은 문화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서, 즉 몸이란 결국 문화적으로 해석된 몸일 수밖에 없다면서, '모든 문화를 가로지르는' 보편적인 인간의 몸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3. 도올이 말하는 동양이란 서양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서정된 것이며 궁극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입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빌어봅니다. 감사합니다.











* 뱀발





핑크 문 - 닉 드레이크



http://naoshimaisland.blogspot.kr/2012/08/pink-moon-nick-drake.html



니체적 잠언 1-3



http://naoshimaisland.blogspot.kr/search?q=%EB%8B%88%EC%B2%B4%EC%A0%81+%EC%9E%A0%EC%96%B8+




로리 앤더슨 - 세상의 끝





http://naoshimaisland.blogspot.kr/2012/06/laurie-anderson-end-of-world.html



2012. 6. 24.

니체적 잠언 2



 
 























1. 행복의 어떤 느낌은 불행의 그것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2. ‘고귀한 천품’이란 것이 있을까 ?
  
3.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만이 행복하다(어린아이들의 행복의 비결).
  
4. 사랑의 고백은 때를 잘 선택해야 한다. 오직 한 번만 가능하므로.

 
5. 왜 그다지도 많은 사상가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고, 아름다움에 대해 분석하고 말하는 것에 그쳤을까 ?

 
6. 종종 우리는 삶에서 ‘환상적인’ 것과 마주치곤 한다(음악, 작품, 사람 …).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 ‘환상’이다(인식 혹은 예술의 본질로서의 환상).
 

7.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외로움은 강요당한 것이라고 해보자.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종종 서로를 넘나든다.

 
8. 당신은 당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
  
9. 때로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10. 악기를 연주할 때 ‘악기소리’가 들리면 안 된다. 오직 ‘음악소리’만이 들려야 한다.
 

11. 음악이란 정신이다. 그것은 정신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다.
 

12. 20세기 최고의 '동양철학자'는 존 케이지이다.
 

13.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끔직한 일이다.
 

14. 모든 인간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15. 속물이란 누구인가? 바로 ‘나’이다.

 
16. 설명하는 사람은 항상 너무 적게 하거나 너무 많이 한다.
 

17. 해설이 없었더라면 작품이 훨씬 더 명료하고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었을텐데 … (니체가 옮겨 적어놓은 글)
 

18. 중용은 중간이 아니다.
 

19. ‘근대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적이다(근대성은 ‘성공한 쿠데타’이다).
 

20.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이 ‘정상적’이다.
 

21. 아름다운 음악은 좋은 음악이다. 그러나 모든 좋은 음악이 아름다운 음악인 것은 전혀 아니다.
 

22. 음악이란 육체이다. 그것은 육체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다.
 

23. 살아있는 동안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은, 보통, 철학자에게는 ‘끔찍한’ 일이다.
 

24. 모든 책은 자신에게 적절한 숫자의 독자를 갖는다. 이 숫자에 미치지 못했을 때 저자는 절망하며, 이를 넘어섰을 때 - 그녀가 ‘진정한 저자’라면 - 그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25. 음악은 듣다보면 점점 커진다.
 

26. 음악은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점점 볼륨을 높여가면서 방의 크기와 자신의 상태에 맞는 적당한 음량에 도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반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7. 니체는 오디오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28. 독자들은 한 권의 책에서 자신에게 이해가능한 것만이 그 책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29. 말을 하는 순간, 모든 신비가 깨진다.
  
30. 언어는 합리주의로, 묵언은 신비주의로 이끈다.
 

31. 인간의 '보편적' 에피스테메 ?
 

32. 보편성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다.
 

33. '사교성' 혹은 '사회성'이란 여전히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다.
 

34.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 허영심이 아니라면 - 재미가 없다.
 

35. 알지 못하는 도시의 여관방은 슬프다.
 

36. 예술은 ‘틀림’에서만 나온다.
 

37. 틀림이 없는 세계에 틀림을 주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38. 지나친 호의, 선의는 인간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다.
 

39.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 있다.
  
40. 크라프트베르크의 세계는 틀림이 없는 세계다.
 

41. 모든 보통 명사는 고유 명사다.
 

42. 매우 흥미로운 질문 -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43. 몹시 쓸쓸한 밤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44. ‘구원’이란 ‘구도’의 동의어이다.
 

45. 당신의 상상과 소망이 당신의 무의식적 배경과 잘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 기능하지 않는다.
 

46. 당신 인생의 모든 중요한 일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47. 절망은 본질적으로 시적이며 연극적인 제스처이다(삶을 예술화하는 하나의 형식으로서의 절망).
  
48. ‘깊이에의 강요’ -  재미있는 말이다.
 

49. 지옥이 예술이다.
  
50. 사람들은 지옥을 필요로 한다.
 

51. 니체의 사상을 요약하는 한 마디의 말 - "관념이 속이는 것이며, 감각이 진실한 것이다."
 

52. 시시때때로 변하는 당신의 기분에 어울리는 음악과 그 음량(침묵과 그 길이)이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사상의학의 본질이다.
  
53. 하이데거는 니체를 ‘기묘한 방식으로’ 존재에로 되돌려 놓는다.
 

54. 카페에서 우연한 기회에 맞은 편으로 자리를 바꿔 앉아보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55. 이상(理想)은 사람을 사로잡는 하나의 강박 관념이다.
 

56. 예술의 본질은 인간 삶의 '덧없음'(vanitas)에서 나온다.
 

57.        '모태신앙'인 사람은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간다(그런데 사실은 우리 모두가 '모태신앙'이다).
 

58. 이제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사람도 자신의 임종시에 ‘다른 모든 이들을 함께 데려가려는’ 시도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59. 우리는 모두 자신의 어떤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다.
 

60. 침묵은 존재하지 않는다(존 케이지).
 

61. 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을 ‘인간’ 혹은 ‘남성’으로 바꾸어서 읽어보라 !
 

62. 사려깊음과 우울함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63. 중국이 공산주의에서 해방될 때 …
 

64. 현대미술은 그 자체로 철학 행위이다(철학의 적용 혹은 응용이 아니다) - 이것이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저주이자 축복이다.

 
65. 깊이는 고통에서만 나온다. 이 점에서 니체는 옳았다.
 

66.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장’ 얻으려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얻지 못한다.
 

67. '제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68.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음악이다 !
 

69.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 늘 생각하는 그 사람이다.
 

70. 한 인간의 참다운 깊이는 그녀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2006. 05. 01. 스트라스부르.


 

2015. 9. 16.

프로이트,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1901

 
* “히스테리 환자가 상징화를 통해 감정이 강하게 얽혀 있는 관념에 대한 신체적인 표현을 만들어낼 때, 여기에 개인적 요소나 자의적인 요소가 좌우하는 부분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그녀가 언어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처 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을 에인다거나 얼굴을 한 방 맞은 것 같은감각을 정말로 느낄 때에는, 히스테리 환자가 기지에 넘치는 언어를 정확히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표현에 기반이 되는 감각을 새롭게 소생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러한 언어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그 모욕을 실제로 심장부의 감각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혹은 그러한 감각과 동일시될 수 없다면, 어째서 모욕 받은 사람을 두고 그것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라고 말하겠는가? 굴욕을 감수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무엇을 눌러 삼킨다라는 표현도, 아무 말도 못하고 모욕에 대해 억눌린 감정을 풀지 못했을 때 목구멍에 생기는 신경 감각에서 실제로 꾹 눌러 참는 현상이 생겨난다는 것은 정말로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이러한 감각과 신경의 지배는 전부 감정의 표현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윈의 이론대로, 기원적으로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현재는 이것이 너무 많이 약화되어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이 우리에게는 단지 비유적인 전달로만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 예전에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히스테리의 강렬한 신경 지배를 묘사할 때 언어의 근원적 의미로 복귀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히스테리가 상징화에 의해 그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는 표현은 어쩌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히스테리가 그러한 용법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히스테리와 언어용법이 똑 같은 근원에서 자신들의 소재를 끌어낸 것이리라.”(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례연구: 엘리자베트 폰 R. (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1895), 김미리혜 옮김, 열린책들, 1997[초판]/2003[재간], 244~245)
 
 
 
 
 
 
 
 
* Sigmund Freud(1856~1939), 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Über Versprechen, Vergessen, Vergreifen, Aberglaube und Irrtum, 1901; 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 1904; 지그문트 프로이트,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망각, 잘못 말하기, 잘못 잡기, 미신과 착오), 이한우 옮김, 열린책들, 1997[초판].
    
 
1. 고유 명사의 망각
 
 
이름의 일시적 망각이 보이는 일정한 특징들. 이런 경우들에서는 이름이 망각될 뿐만 아니라 잘못 기억되기도 한다.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이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다른 이름들-대체 이름들Ersatzname-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그 이름들이 우리가 기억해내려고 하는 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린다. 그러나 대체 이름들은 대단히 집요하게 계속 바뀌어 가며 우리에게 강박적으로 작용한다. 기억해내려고 하는 이름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은 말하자면 위치가 잘못되어있고, 그래서 엉뚱한 대체물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전제하려 한다. 즉 이처럼 위치가 잘못되는 것은 정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길들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대체 이름이 기억해 내려고 하는 이름과 일정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연결방식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12).
    
 
2. 외국어 단어의 망각
 
 
다만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특정한 의도 없이 망각한 단어에 주의를 집중할 경우 당신의 정신 속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다 솔직하게그리고 무비판적으로나에게 말해주세요(23).
 
 
3. 이름과 단어군의 망각
    
 
전위(轉位, Verschiebung, displacement, déplacement)(51).
 
 
4.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은폐 기억들
 
 
우리의 기억 작용이 예기치 못한 목적성을 갖는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기억들은 전위의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그 기억들은 기억 재생 과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다른 인상들을 대체한 것이다. 이 중요한 인상들에 대한 기억은 심리 분석을 통해 별로 중요치 않은 인상들에서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인상들은 저항Widerstand으로 인해 직접 재생되지 않는다. 사소한 기억들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이 다른 억압된 내용과 맺고 있는 연상관계에 의해 보존되기 때문에 내가 그것들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은폐기억Deckerinnerung’이라고 불릴 나름의 이유를 갖게 된다(69~70).
 
 
일반원리. 기억 재생 기능이 실패하거나 방향을 상실할 경우, 그런 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의도적인 요인, 즉 어떤 기억은 촉진하면서 다른 기억은 재생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갖는 교란을 통해 일어난다(72). 성인의 기억이 대체로 어린 시절의 정신적 과정 중 극히 일부만을 보존해 왔다는 사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이 어린 시절의 체험들은 흔히 생각하듯이 인격 발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 그의 인생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해 왔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독특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들은 망각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아주 특별한 종류의 상기(想起)-의식적 재생이라는 의미에서이다-의 조건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조건들을 인정하기를 꺼려 왔다. 말할 것도 없이 어린 시절의 망각은 우리에게-아주 최근 정신분석의 성과에 따르면-모든 신경증의 증상을 형상하는 기초에 놓여 있는 그런 종류의 망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73). [...] 어떤 사람이 성인이 될 때까지 보존한 기억들을 분석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들의 정확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것들의 기억 상() 중 일부는 시간이나 장소가 잘못되거나 불완전하거나 전위된 것들이다. 자신의 최초 회상은 두 살 무렵의 것이라고 하는 분석 대상자의 진술은 분명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경험의 왜곡과 전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이런 잘못된 회상들이 단순히 기억의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동기들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성인기의 강력한 힘들이 어린 시절의 체험들을 회상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74). 소위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들에서 우리는 진정한 기억의 흔적들Erinnerungspur이 아니라, 이후에 수정된 기억을 갖게 된다. 결국 이런 수정된 기억이란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개개인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일반적으로 은폐기억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며, 나아가 한 민족이 전설과 신화들 속에 보존하고 있는 초창기 기억들과 상당히 유사성을 보이게 된다(75).
 
 
5. 잘못 말하기
 
 
메링어와 마이어(R. Meringer und C. Mayer), 잘못 말하기와 잘못 읽기, 심리학적-언어학적 연구 Versprechen und Verlesen, eine psychologisch-linguistische Studie, 1895. 단어나 문자의 음들이 대단히 고유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일정한 심리적 메커니즘의 발견이 목표(82). 오스트리아 하원 의장이 개회를 선언하면서 여러분, 정족수가 이루어졌으므로 폐회를 선언합니다.”(89)
 
 
자신의 숙모에 대해 말을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환자도 있는가 하면, 또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말하는 환자도 있다. 이렇게 말을 잘못하는 것으로 환자가 이들 두 사람을 동일시’(同一視)하고 있으며, 그 환자의 감정생활에서 이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대신하고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9).
 
 
여기서 덧붙여 말하면,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의 이름을 틀리게 말하는 사람들은 귀족 계급에 많다. 이런 사실을 통해 그들이 의사에 대해 약간은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만, 내심으로는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24, 1906년에 추가한 원주 69).
 
 
6. 잘못 읽기와 잘못 쓰기
    
 
7. 인상의 망각과 의도의 망각
    
 
모든 경우에 망각은 불쾌의 동기에 그 근거가 있음이 입증된다.’(195)
 
 
물건을 잘못 놓는 것은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가를 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문자와 책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찾는 것을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무질서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199).
    
 
우리 중 한 명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며 ‘cui prodest 누가 이익을 얻게 되는가?’라는 격언에 비춰 본다면 그것은 나일 가능성이 높았다(205).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니체가 자신의 잠언집 선악의 피안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적나라하게 그 현상과 그것의 심리적 기초를 제시한 적이 없다. “나의 기억은 말한다. ‘내가 이것을 했다.’ 나의 자부심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의기양양해 한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결국 기억이 항복한다.”(208~209, 1910년에 추가된 원주 15) * 68. 내 기억은 이것을 내가 했다고 말한다. 내가 그러한 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내 자부심은 말하며 냉정해진다. 결국 기억이 양보한다(프리드리히 니체, 4장 잠언과 간주곡, 선악의 저편, 선악의 저편(1886)도덕의 계보(1887), 니체 전집 14, 책세상, 2002, 108).
    
 
위대한 과학자 다윈은 망각의 동기로 불쾌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서 과학자들의 황금률을 제시했다(210). 어네스트 존스는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 다윈의 자서전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 주목했다. 그 구절은 학문적 정직성과 심리학적 예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수년 동안 나의 일반적인 관찰 결과들과 상충되는 출판물이나 새로운 관찰, 혹은 사상이 나오면 언제든지 그것을 즉각 기록한다는 황금률을 준수했다. 왜냐하면 나는 경험을 통해 그런 사실들과 사상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비해 훨씬 멀리 내 기억에서 떨어져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같은 쪽, 1912년에 추가된 원주 18)
 
 
문외한들조차 망각은-그것이 의도의 망각인 한-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요소적 현상일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공인받지 못한 동기들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는 생활 속의 두 가지 상황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애와 군기(軍紀)이다. [...] “1년 전이었다면 잊지 않았겠죠. 분명 당신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전에는 일이 그만큼 안 바빴나요.”(216~217)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망각의 결과로 뭔가 빼먹은 사례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나는 그것들이 미지의 공인되지 않은 동기들-우리는 그것을 반대의지Gegenwill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 의한 교란 작용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218).
 
 
관례적인 의무와 우리가 개인적으로 채택한 공인되지 않은 견해 사이의 충돌은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선의로 하겠다고 약속한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망각해버린 사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망각이 변명으로서 효력을 갖는다고 믿는 사람은 그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뿐이다. 선의를 요청하는 사람은 올바른 대답을 알고 있다. ‘그는 그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것을 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220)
 
 
일반적으로 뭘 잘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있다. [...]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이런 사소한 잘못들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즉 그들이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특이체질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비유에 기초해, 이런 경우에 그 동기는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 선천적인 요인을 사용하는 다른 인간들에 대한 대단한 경멸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220~221).
 
 
나로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결정체인 지혜가 왜 과학의 성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과학적 탐구의 본질적인 성격은 연구 대상의 특수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정립하는 엄밀한 방법과 얼핏 상관없어 보이지만 탐구를 통해 연관이 드러나는 그런 상호관계의 탐색에 있다(223).
 
 
우리는 놀이를 하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의 진실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223, 원주 30).
    
 
의도의 망각은 우연이 아니라는 일반적 생각을 보여주는 격언이 하나 있다. ‘일단 뭔가 할 일을 잊어버리면 그는 계속해서 그 일을 잊어버릴 것이다.’(225~226)
 
 
8. 잘못 잡기
 
 
하인들이 깨지기 쉬운 물건을 떨어뜨려 부순다면, 여기에 음험한 동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먼저 심리학적 설명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한 존중만큼 교양 없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없다. 그런 작품에 대한 무감각한 적의가 우리 민중을 지배하고 있다(241).
    
 
가족의 한 사람이 혀를 깨물었다거나 손가락을 찧었다는 것과 같은 하소연을 한다면, 나는 그가 기대하는 동정심 대신에 그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라고 묻는다. [...] 비록 서툰 표현이지만 반() 의도적인 자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의도한 자살 이외에 반() 의도적인 자멸도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자멸은 사람의 위협을 교묘히 이용하여 그것을 우연적 재앙으로 가장할 줄 안다(249).
    
 
그래요. 그것은 아마도 이었을 거예요.” [...] “나는 자주 너는 네 자식을 죽였어라고 나 자신을 비난했어요. 나는 이런 벌을 받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을 가졌어요. 이제 선생님이 눈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확인해주니까 안심이 되네요. 어쨌거나 나는 이제 충분히 벌을 받았어요.’” 결국 이 사고는 한편으로 그녀의 범행에 대한 자기 징벌이자, 다른 한편으로 한 달 내내 그녀가 두려워했던 아마도 미지의 더 큰 벌을 벗어나기 위한 자기 처벌이었다(254). 실수 행위에 의한 자기 처벌(255, 1920년에 추가한 원주 27). 이처럼 사고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과 같은 수많은 경우들에서 그런 설명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외부인은 그 사고에서 우연에 의한 발생 이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반면 희생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고의 배후에 있을 지도 모를 무의식적 의도를 의심할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 “만일 솔직한 나[현재의 약혼자]의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면, 나는 그 재앙을 우연한 사고나 우울한 의식의 결과가 아니라 무의식적 목적에 따라 수행되고 우연한 사고를 가장한 의도적인 자기 파괴라고 보고 싶습니다.”(256~267)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이 작은 존재가 죽는다면, 나는 자유로울 것이고 아내와 이혼할 수 있을 것이다.”(259)
 
 
9. 증상 행위와 우연 행위
 
 
나는 그런 우연행위들을 증상행위 Symptomhandlung’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연행위들은 행위 주체 자신이 전혀 의심하지 않은 것, 따라서 대체로 그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고 오로지 자신만이 간직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는 행위들이다(264). 알퐁스 매더, “어느 한 여자가 최근에 들려준 얘기로,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일을 잊고 있다가 결혼 전날 밤 8시에 그 사실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드레스를 만든 사람은 고객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다 그냥 포기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일을 그리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아마 그녀로서는 그 고통스러운 행사를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 그녀는 이혼했다.”(282~283)
 
 
 * 이말을 듣고 내가 아는  한 분이 내게 결혼식 전날 반지를 잃어버린 신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헤어지게 된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신부는 결혼 이전부터 구타를 당하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무의식은 그녀의 의식과 달리 이 결혼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결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토 랑크는 제법 긴 어느 글에서 그런 행위, ‘물건을 잃어버리는 분실 행위의 기저에 뭔가를 제물로 바치고 싶은 분위기가 있음을 밝히고 또 그 심오한 동기를 찾아내기 위해 꿈-분석을 이용한 적이 있다. 그의 글이 흥미를 끌게 된 것은 몇 년 후 그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것을 되찾는행위 또한 (심리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을 때였다(289~290).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단어든 자유롭게 선택하여 우리의 생각을 포장하고, 어떤 이미지든 자유롭게 끌어내 우리의 생각을 위장시킨다. 그런데 조금만 더 면밀히 관찰해보면, 그와 같은 자유로운 선택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들이 있으며,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형식 그 이면에 행위의 주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더욱 깊은 의미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고자 할 때는 그 사람이 특징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나 단어들을 분명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 밖의 다른 의미나 단어들은 말을 할 당시에는 이면에 감춰진, 그러나 분명 화자(話者)에게 강하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떤 주제를 넌지시 암시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301).
    
 
10. 착오
 
 
사람들은 아마도 진실하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지도 모른다(309).
 
 
11. 복합적 실수 행위
 
 
12. 결정론, 우연에 대한 믿음과 미신 관점들
 
 
일반적인 결론. 정신 활동의 불완전함과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일정한 행위들을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것들이 의식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이유들에 의해 생겨나고 결정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 잘못된 어떤 행위는 위와 같은 설명이 가능한 여러 행위들 중의 하나일 텐데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a) 이 행위는 우리의 판단이 정하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상태라고 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b) 이 행위는 또한 잠시 동안만 지속되는 잠정적 혼란만을 나타내야 한다. , 이 행위는 우리가 이전에는 정확하게 실행했던 행위였고, 앞으로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행위여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행위를 했을 때 누군가가 지적을 해준다면 이 지적이 정확하다는 것과 우리의 정신적 움직임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c) 잘못된 행위를 했거나 혹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도 이 행위의 동기가 의식되지 않아야 하고 그 원인을 우연이나 부주의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무지의 결과가 아닌) 망각, 착오, 잘못 말하기, 잘못 읽기, 잘못 쓰기, 잘못 잡기 등 우연한 행위들을 모두 잘못된 행위의 범주에 속한다. / 독일어의 경우 잘못된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들은 모두 ver라는 음절로 시작되는데 이는 모든 잘못된 행위들 사이에 내적인 동일성이 있음을 알려준다고 볼 수 있다[잘못 말하기 Ver-sprechen, 잘못 읽기 Ver-lesen, 잘못 쓰기 Ver-schreiben, 잘못 잡기 Ver-greifen](333~334).
 
 
[정신] 분석적으로 검토를 해보면, 놀랍게도 단지 숫자만이 아니라 동일한 조건 속에서 주어진 그 어떤 단어들 역시 완벽하게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350~351).
 
 
편집증 환자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그들은 타인들의 행동 속에서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지나쳐버리곤 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소한 점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들은 사소한 것들을 해석하여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들을 끌어낸다. 예를 들어, 내가 최근에 관찰한 한 환자는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유인즉 그가 역을 떠날 때 사람들이 어떤 손동작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환자는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지팡이를 휘두르는 방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도 했다(원주 25. 무의미하고 우연에 지나지 않는 모습들에 대한 이러한 해석들을, 다른 관점에 근거하여 관계망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편집증 환자들은 어떤 이유로 사물을 이렇게 보게 된 것일까? 다른 유사한 경우들처럼 이 경우에도,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타인들의 정신적 삶 속에 투사(投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러나 오직 자신에게만 사실인 것을 타인들에게도 사실인 것으로 확장시켜 보기 때문에, 편집증 환자의 앎은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355~356).
 
 
나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실제의) 우연은 믿지만, 내부의 (정신적인) 우연은 믿지 않는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우연이란 없다. 미신을 믿는 자들은 그 반대다. [...] 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현대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신화적 관념이 외부 세계에 투사된 하나의 심리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초감각적 현실은 과학을 통해 무의식의 심리학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되면, 천국, 원죄, 하느님, 나아가서는 선과 악이나 영생 등에 관련된 신화들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고, ‘형이상학초심리학으로 번역할 수도 있게 된다. [...] 사고를 시작했을 때 인간들은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적 사고를 함으로써 이 세계가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수많은 인격체들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미신은 과학이 도래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정당한 것이었다. 미신은 과학 이전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하나의 논리적 보완물이었던 것이다(358~361).
 
 
미신이 억압된 어떤 적대적 충동이나 잔혹한 충동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사실은 강박적 사고나 강박적 충동에 빠져 있는 신경증 환자-그들은 대체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들에게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개 미신은 문제꺼리가 발생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사악한 소망을 품고는 있지만 착한 사람이 되라는 도덕 교육을 많이 받아 자신의 그 사악한 소망을 무의식 속에 억압하고 있는 사람은 외부에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어떤 위협적인 문제꺼리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사악함을 징벌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362~363).
    
 
데자뷔(旣視感, déjà vu, already seen). 내가 보기에 어떤 일을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을 환각이나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는 과거에 경험했던 무엇인가가 정말 다시 떠오른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없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기시체험의 느낌은 어떤 무의식적 환상을 다시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370).
 
 
전환단어. 언어의 다리. 연상의 다리(382).
 
 
억압된기억의 경우, 그 기억의 흔적은 아무리 장기간의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는다. 무의식은 무시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고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면서 또한 가장 낯선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모든 인상이라는 것이 처음에 지각된 형태 그대로 보존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더 발달된 형태 속에서도 그대로 보존된다는 사실이다(383).
    
 
만일 우리가 그런 행위들[실수와 꿈-작업]을 정신신경증의 결과나 신경증 증상과 비교한다면 종종 반복되어 나타날 두 가지 진술, 즉 신경증과 관련해서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게 되고, 우리 모두는 약간씩 신경증의 증세를 지니고 있다는 진술이 의미 있는 것으로 와 닿으면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 가장 심각한 경우든 가장 가벼운 경우든 모든 사례들이 다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실수나 우연 행위 속에서 똑 같이 발견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 현상들의 근원을 따지면 모두가 불완전하게 억압된 심리 재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불완전하게 억압된 심리 재료는 의식에 의해 거부되긴 했어도 그 표출 능력을 완전히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387~388).